2008년 3월 18일 화요일

현실이 되어버린 미래, 스마트 디바이스

지난 1월에 열린 2008 맥월드 엑스포에서 기조 연설을 하던 스티브 잡스는 무대 한 켠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서류 봉투를 들고 청중들 앞에 섰다.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청중들 앞에 잡스는 손에 든 서류 봉투에서 2008년의 신제품을 꺼내 보였다. 그것은 바로 애플의 새 노트북, 맥북 에어(MacBook Air)였다.

가장 얇은 부분이 4mm, 가장 두꺼운 부분이 19.4mm에 불과한 이 신제품은 발표가 끝나기가 무섭게 인터넷과 블로고스피어를 논쟁으로 뜨겁게 달구었다. 맥북 에어는 애플의 여느 제품처럼 멋진 디자인을 자랑하지만 USB 포트가 하나밖에 없고 하드 디스크도 80G에 불과하다. 메모리는 2G에서 더 이상 확장할 수 없으며 CD/DVD-ROM같은 광 드라이브도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이 제품이 세상에 던지는 중요한 의미는 다른 곳에 있다.

우리는 스티브 잡스가 맥북 에어에서 용감하게 선을 제거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맥북 에어는 유선 네트워크 기능 없이 오직 블루투스와 802.11n, 두가지의 무선 네트워크 기능만 지원한다. 소프트웨어의 설치, 데이터의 백업까지도 모두 이 무선 기능에 기반한다.

이러한 개념은 아직 소비자들에게 받아들여지기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곧 다가올 미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미 현실이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랩탑(Laptop)

우리가 책상(Desk) 위(Top)에 올려놓고 사용하는 컴퓨터는 데스크 탑(Desktop)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무릎(Lap) 위(Top)에 올려놓고 사용하는 컴퓨터는 뭐라고 부를까? 정답: 랩탑(Laptop)이다. 랩탑은 노트북(Notebook:공책) 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름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랩탑/노트북 컴퓨터는 무엇보다도 이동성의 개념을 추구하는 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상업용 랩탑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1980년대 초반(PC의 등장시기와 비슷하다.)으로, 이 당시의 랩탑은 무릎 위에 올려 놓기에는 건강상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크기와 무게를 자랑했다. 게다가 오늘날의 랩탑처럼 무선 네트워크 기술이나 강력한 배터리(물론 상대적인 기준에서) 성능을 가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당시 랩탑의 진정한 가치는 “이동성”보다는 “이동 설치성”에 있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무어의 법칙은 랩탑의 모든 것을 빠른 속도로 집적시켜 성능은 기하 급수적으로 높이되, 크기는 줄였다. 랩탑의 두께는 얇아지고 디스플레이는 커졌으며, 성능은 PC에 근접할 정도로 향상되었다.

하지만 크기와 무게 외에도 랩탑의 이동성을 저해하는 요소가 있었으니, 그것은 컴퓨터에 전원을 공급하기 위한 케이블이었다. 전원 케이블은 배터리를 채용함으로써 간단히 해결이 되었지만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랩탑은 다시 네트워크 케이블에 발이 묶이게 되었다. 이전에는 ‘나 홀로 컴퓨팅’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인터넷 없는 컴퓨터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랩탑을 묶고 있던 이 마지막 끈은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Wi-Fi 무선 기술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풀렸다. 선이 없이도 컴퓨팅을 할 수 있는 진정한 “이동성”을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Wi-Fi 핫스팟이 터미널, 공항, 도서관, 빌딩 등 곳곳에 설치되어 어디서든 무릎 위에 노트북을 펴놓고 인터넷을 사용하여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상상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이젠 더 이상 신기할 것이 없어진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

랩탑이 무릎 위에 올려놓고 사용하는 컴퓨터라면, PDA는 손바닥(Palm) 위에 올려놓고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PDA는 팜탑(Palmtop)으로 불리기도 한다.

PDA는 “PC의 모든 기능을 담을 수 있는 차세대 이동형 기기”라는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소형 컴퓨터이다. 문서 작성/편집이 가능하고, 멀티 미디어 기능을 갖추었으며, 무선 네트워크 기능을 갖추고 있어 이메일 송수신을 할 수 있는 등 한 마디로 못하는 것이 없는 소형 컴퓨터이다.

그러나 오늘날 PDA는 처음 받았던 기대와는 반대로 사양길을 걷고 있다. PC와 거의 대등한 성능을 가지면서도 PDA와 비슷한 크기를 갖는 UMPC, 소형 랩탑과 스마트폰 사이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PDA 시장을 주름잡던 팜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이런 현실을 잘 대변한다.). 몇 년 전에는 네비게이션와 컨버전스된 제품이 인기를 모으면서 잠깐동안 PDA가 부활하는 듯 했으나, 현재는 네비게이션 PMP(Portable Media Player) 제품의 인기 때문에 이마저도 시장에서 물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PDA는 확실히 주류에서 밀려나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퇴장한 것은 아니다. 언제 또 어떤 모습으로 되돌아올지 모르는 일이다.

태블릿(Tablet) PC

태블릿 PC는 2001년 컴덱스에서 MS의 빌게이츠 회장에 의해 처음 세상에 소개되었다. 크기는 공책과 비슷하고 무게는 노트북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태블릿(Tablet)은 ‘판’이라는 뜻이지만, 태블릿 PC가 가지는 존재의 의미는 단순히 얇거나 가볍다는 데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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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게이츠는 그의 저서 <Business @ the Speed of Thought>에서 종이처럼 펜으로 기록하고 저장할 수 있는 컴퓨터를 중심으로 “종이 없는 사무실” 환경에서 사람들이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그의 비전은 다른 미래 학자들이나 분석가들의 그것과 달리, 비전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힘(기술과 자본)을 가지고 있기에 이 비전은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태블릿 PC는 이 비전을 위해 고안된 스마트 기기이다.

PDA가 가졌던 성능/저장용량/디스플레이/터치 인식 기술의 한계를 오늘날의 태블릿 PC는 모두 넘어서고 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는 태블릿 PC 시대의 도래를 대비하여 운영체제부터 주요 비즈니스 어플리케이션들을 향상시켜왔다(LCD 디스플레이에서의 미려한 글꼴 출력을 가능하게 하는 ClearType™ 기술이 대표적인 예다.).

태블릿 PC를 이용하면 종이에 글씨를 쓰듯 화면에 손가락이나 펜으로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고,동료가 보내온 문서에 펜으로 메모를 적어 답장을 보내줄 수도 있다. 키보드나 마우스를 연결해서 사용할 수도 있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손가락이나 펜을 이용해 컴퓨터를 다루도록 고안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태의 컴퓨터가 어디에 응용 될 수 있을까? 답은 “모든 곳”이다. 우리는 키보드나 마우스보다 펜이나 연필을 이용하여 생각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데 더 편안함을 느낀다.

태블릿 PC는 현재 의료계와 학교, 그리고 지식 근로자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일부병원에서는 의료진이 차트 대신 태블릿 PC를 들고 다니면서 실시간으로 환자의 상태를 기록하거나 열람하고 있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교과서인 동시에 노트로써 사용되고 있다.

UMPC(Ultra Mobile PC)

UMPC도 마이크로소프트에 의해 고안된 스마트 디바이스다(마이크로소프트가 스마트 디바이스 분야에 대해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오리가미(Origami)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초소형 PC 프로젝트는 아주 작은 전력을 소모하면서도 데스크탑 PC의 성능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텔, 삼성 전자가 이 프로젝트에 함께 했으며 태블릿 PC를 위해 개발된 기술이 대부분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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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체제로는 리눅스 또는 윈도우 XP, 윈도우 비스타를 사용할 수 있으며, 따라서 오피스를 비롯하여 PC에서 사용하던 응용 프로그램 및 태블릿 PC용 응용 프로그램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무게 900 그램(앞으로 이 무게는 점점 가벼워 질 것이다.)에 크기는 손바닥만한 PC, 게다가 태블릿 PC의 기술도 적용되어 종이에 쓰듯 화면 위에 펜으로 기록할 수 있고 무선 네트워크도 사용할 수 있다. UMPC는 태블릿 PC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가 꿈꾸는 “종이 없는 사무실”의 중심에 서 있다.

스마트 폰(Smart Phone)

앞서 살펴본 PDA, 태블릿 PC, UMPC가 책상 위에 있던 컴퓨터를 사람의 손 안에 올려놓기 위해 고안된 제품이라면, 스마트 폰은 이미 사람들의 손에 쥐어져 있는 휴대폰의 성능과 기능을 컴퓨터에 가깝게 향상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스마트 폰은 태생적으로 PDA와 별개의 기기지만, 컨버전스의 영향으로 외형이나 기능 면에서 점점 PDA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애플의 아이폰(iPhone), RIM의 블랙 베리가 대표적인 스마트 폰이다.

아이폰은 멋진 디자인의 MP3 플레이어이자 전화기이다. 동시에 일정 관리 도우미이기도 하며 인터넷 브라우저이다. 처음 가는 길을 안내해주는 네비게이션이기도 하고, 카메라이자 이메일 송수신 장치이기도 하다. 아, 하드 디스크에 저장해 놓은 E-Book을 읽을 수도 있다.

스마트 디바이스의 미래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왔던 기술의 발전처럼, 미래에도 스마트 디바이스의 두께는 점점 얇아질 것이고 무게 또한 점점 가벼워질 것이다. 무선 통신을 위한 모바일 인프라 역시 꾸준히 발전하여 달리는 기차 안에서도 HD 화질의 영화를 스마트 디바이스를 통해 감상할 수 있는 속도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스마트 디바이스는 컴퓨터를 사무실이나 가정의 책상으로부터 사람의 손 안으로 옮겼다. 이제 우리는 사무실에서, 달리는 차 속에서, 걸어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카메라, 펜과 같은 다양한 입력 장치와 무선 통신 기능을 갖고 있는 스마트 디바이스는 우리에게 새로운 차원의 “소통의 시대”를 열어주었다. 스마트 디바이스로부터 만들어진 문자, 목소리, 영상,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를 무선 인프라를 통해 어느 곳에 있는 누구에게라도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은 우리에게 자유롭고 방대한 정보에의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휴대폰은 위치에 구애받지 않는 소통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면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이 모든 정보 기술들을 하나로 통합한 스마트 디바이스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까? 컴퓨터, 인터넷, 그리고 휴대폰은 각각 수많은 비즈니스를 일으키며 엄청난 산업 분야로 성장했다. 스마트 디바이스 분야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까? 5년 후 우리의 삶이 이런 물음에 대해 답해줄 것이다.

댓글 4개:

  1. "이 당시의 랩탑은 무릎 위에 올려 놓기에는 건강상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크기와 무게를 자랑했다."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

    태블렛 PC와 UMPC가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서 밀고 있는 거였다니... @0@)/~ 처음 알았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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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론 사진의 바이오 UX시리즈는 오리가미 프로젝트의 작품이 아닌데요. ^^ 확인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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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kkamagui - 2008/03/19 20:43
    감사합니다 까마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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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잠은그때그때 - 2008/03/22 02:06
    '흠. 이게 바로 UMPC야'하는 디자인의 이미지를 고르다보니 무식하게 소니 제품의 이미지를 사용했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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